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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들 - 인지편향

위험 회피 편향 - 불확실성을 피하려는 본능의 이면

by SerendInfo 2025. 4. 12.

“100만 원을 무조건 받을 수 있다면, 50% 확률로 200만 원을 받을 기회를 굳이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질문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민 없이 100만 원을 고른다. 확률적으로는 같거나 오히려 기댓값이 더 높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말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건 전혀 이상한 반응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불확실한 이익보다 확실한 손실 회피를 더 중요하게 느끼는 건 우리 뇌가 오랫동안 훈련해 온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전략이 현대 사회에서는 때때로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위험 회피 편향이란 무엇인가

위험 회피 편향(Risk Aversion Bias)은 불확실성이 개입된 상황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이익이 날 수 있는 기회를 회피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이 편향의 존재를 실험을 통해 밝혀냈고,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으로 이 현상을 이론화했다. 요약하자면, 사람은 같은 크기의 이익과 손실을 비교했을 때 손실 쪽에서 더 큰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 다시 말해, 100만 원을 벌었을 때의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었을 때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감정적인 비대칭은 우리가 내리는 크고 작은 의사결정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이 편향은 단순히 투자나 도박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심지어 아주 사소한 결정 앞에서도 이 심리의 영향을 받는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잃을지도 모른다’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우리는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만다. 그 뒷걸음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게 된다. 선택지를 좁히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우리 일상에 숨어 있는 위험 회피 편향

예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했을 때가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준비도 충분했고, 시장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지금 이 안정된 상황을 버리는 게 맞을까?"라는 질문이 맴돌았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아니었다. ‘지금 가진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그것이 바로 위험 회피 편향이다.

이 편향은 자주, 아주 교묘하게 나타난다. 낡고 불편한 집에 계속 사는 이유, 비효율적인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는 이유, 안정적인 직장에 머무르면서 더 나은 기회를 외면하는 이유. 어쩌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의 안정을 놓는다는 건 불확실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확실한 손실’ 뒤에 더 큰 기회가 있을 가능성은 생각보다 높다. 문제는 그 가능성까지 가는 길이 두렵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땐 왜 그걸 안 했을까?”라며 과거의 선택을 되돌아보곤 한다. 당시에는 가장 안전해 보였던 길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가장 큰 기회를 놓친 결정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위험 회피 편향은 지금의 안정을 보호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파란색 '안정' 버튼과 빨간색 '기회' 버튼 사이에서 선택하려는 손의 모습

 

왜 우리는 불확실성을 그렇게 무서워할까?

위험 회피 편향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다. 이는 수십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다. 원시 시대의 인간에게 불확실한 환경은 생존의 위협이었다. 베리 하나를 따기 위해 숲 속에 들어갔다가 맹수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었다. 반면, 먹던 나무열매를 계속 따먹는 것은 안전한 선택이었다. 뇌는 그런 행동을 긍정적으로 강화했고, 그 유전적 성향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현대에 들어선 우리는 맹수를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실패, 후회, 평가, 돈의 손실 같은 심리적 요소들이 ‘위협’으로 작용한다. 뇌는 여전히 불확실성을 ‘위험’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위험을 피하라는 신호를 감정이라는 방식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나고, 결국엔 원래 하던 대로 돌아선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때로는 그 불확실성 안에서 가장 큰 보상을 제공한다. 이 괴리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건, 어떤 사람들은 이 불확실성을 ‘재미’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성공의 가능성보다, 그 과정에서 겪는 긴장과 모험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결국 똑같은 상황도 누구에게는 위협이고, 누구에게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환경이 아니라 해석이다.

 

이 편향을 인식하고 삶에 적용하는 방법

가장 먼저 할 일은 알아차림이다. ‘내가 지금 왜 이런 결정을 하려는 걸까? 혹시 위험 회피 편향 때문은 아닐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만으로도 판단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불안하거나 불확실한 상황 앞에서 멈춰서 이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들이면, 의외로 많은 순간에 우리가 편향된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프레이밍을 바꾸는 연습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무엇을 잃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로 바라보는 관점을 갖는 것. 예를 들어, “창업을 하면 지금의 안정된 월급을 잃는다”가 아니라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시간과 수입 구조를 만들 수 있다”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다. 같은 현실이라도 프레임이 바뀌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세 번째는 불확실성에 대한 내성을 기르는 것이다. 작게 시도하고, 작게 실패해보는 경험이 쌓이면 두려움은 점차 줄어든다. 일기를 쓰거나, 투자 로그처럼 자신의 선택을 기록하고 복기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객관적인 기록은 감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혀준다. 불확실성은 없앨 수 없지만, 익숙해질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성을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모든 불확실한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그 불확실성 속에서만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도전에는 리스크가 따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마무리

우리는 누구나 불확실성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본능이고,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본능이 우리 삶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면, 한 번쯤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외면하고 있는 선택이, 어쩌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던 기회는 아니었을까?

불확실함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게 진짜 성장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다음에 찾아올 그 ‘망설였던 기회’ 앞에서는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