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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들 - 인지편향

단순 노출 효과 - 익숙함이 호감을 낳는 심리적 착각

by SerendInfo 2025. 4. 8.

지난 주말,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려온 노래가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처음엔 그저 그런 곡이었는데, 몇 번 더 들으니 어느새 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왜 처음에는 별로였던 노래가 반복해서 들을수록 좋아졌을까?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이건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뇌의 작동 방식과 관련된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라는 심리현상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가 1960년대에 발견한 이 현상은 생각보다 우리 삶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은 이 익숙함이 어떻게 우리의 호감도를 높이는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살펴보려 한다.

반복된 광고에 점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모습

 

"낯선 것은 위험하다" - 우리 뇌가 익숙함에 빠지는 이유

어렸을 때 처음 먹어본 김치가 너무 맵고 싫었는데, 반복해서 먹다 보니 어느새 없으면 서운한 음식이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단순 노출 효과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심리적 원리다. 쉽게 말해 '자주 접하는 대상을 더 선호하게 되는 현상'인데, 이건 우리 뇌의 생존 메커니즘과도 관련이 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조상들에게 '낯선 것'은 잠재적인 위험이었다. 처음 보는 열매는 독이 있을지도 모르고, 낯선 사람은 적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익숙한 것은 이미 경험해 봐서 안전하다고 증명된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 뇌는 자연스럽게 익숙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발달했다.

자이언스의 실험은 꽤 재미있다. 그는 피험자들에게 중국어 문자나 무의미한 도형 같은 생소한 이미지를 다양한 빈도로 노출시켰다. 결과는? 더 자주 본 이미지를 사람들이 더 선호했다. 심지어 자신이 그 이미지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말이다!

이런 현상은 '인지적 처리 유창성'이라는 개념과도 연결된다. 익숙한 정보는 우리 뇌가 더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고, 이 처리 과정이 원활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뇌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면에서 좀 게으른 셈이다.

 

"그 노래, 갑자기 왜 좋아졌을까?" - 일상을 지배하는 익숙함의 마법

내가 대학생 때 공부하면서 늘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시간에는 항상 같은 광고가 나왔는데, 처음엔 정말 짜증났지만 나중엔 그 광고 멜로디가 없으면 뭔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형적인 단순 노출 효과였다.

이 현상은 마케팅에서 특히 많이 활용된다. 왜 기업들이 같은 광고를 반복해서 틀까? 단순히 제품을 알리는 것 이상으로, 소비자에게 익숙함을 통한 호감을 심기 위해서다. 로고, 징글, 캐릭터 같은 브랜드 요소를 계속 접하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브랜드에 긍정적인 감정을 형성하게 된다.

음악 취향도 마찬가지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그렇던 노래가 라디오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반복해서 나오면, 어느새 흥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 없는가? 최근 유행하는 '숏폼' 콘텐츠에서 반복되는 배경음악도 비슷한 원리로 우리 귀에 꽂히게 된다.

대인 관계에서도 이 효과는 중요하게 작용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물리적 근접성은 호감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같은 수업이나 사무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건 단순 노출 효과가 한몫한다. 대학 때 자주 마주친 후배가 어느새 애인이 되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까, 단지 자주 봐서 좋아하는 걸까?" - 판단의 함정

작년에 몇 달간 매일 지나던 길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 처음엔 별생각 없었는데, 자주 보다 보니 "괜찮아 보이네"라는 생각이 들어 들어가 봤다. 솔직히 커피 맛은 평범했지만, 왠지 계속 가게 되더라. 이렇게 단순 노출 효과는 우리의 판단을 미묘하게 왜곡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호감이 객관적인 품질이나 가치와 별개로 형성된다는 점이다. 자주 듣는 음악, 자주 보는 뉴스 채널, 자주 사용하는 제품을 우리는 과연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현상이 확증 편향과 결합될 때다. 특정 정치인이나 이념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더라도 점차 익숙해지고 결국 그 관점을 수용하게 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편향된 정보에 갇히는 '필터 버블' 속에 살게 된다.

한 번은 친구가 추천한 웹툰을 처음 봤을 때 그림체가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가 계속 얘기하니까 한 번 더 보게 됐고, 몇 화를 더 보니 어느새 그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 찾아보고 있었다. 뒤늦게 '내가 진짜 이 작품을 좋아하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익숙해져서 그런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단순 노출 효과는 우리의 진짜 선호와 단순한 익숙함에 의한 선호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익숙함의 덫에서 벗어나기" - 단순 노출 효과를 이기는 전략

그렇다면 이런 무의식적인 편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이 현상 자체를 인식하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이게 정말 내 취향인지, 단지 익숙해서 그런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익숙함이라는 렌즈를 벗어나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하려고 노력해 보자. 예를 들어 새 휴대폰을 살 때, 단지 익숙한 브랜드라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성능과 가격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항상 같은 장르의 음악만 듣거나 같은 유형의 영화만 본다면, 가끔은 전혀 다른 것을 시도해보자.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더 풍부한 경험을 가져다줄 수 있다.

여러분은 어떤가? 매일 아침 같은 지하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길을 걸어 출근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로 선택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셨나요? 오늘부터 조금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다른 길로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단순 노출 효과는 우리의 선택과 판단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현상을 이해하고 의식적으로 대응할 때, 우리는 더 자유롭고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익숙함이라는 안전지대를 가끔 벗어나는 용기가 새로운 가능성과 더 넓은 세계를 만나는 첫걸음이 아닐까?

다음 포스팅에서는 '확증 편향'에 대해 이야기해볼 예정이다. 우리가 이미 믿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이 흥미로운 심리현상, 어쩌면 단순 노출 효과와도 깊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