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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들 - 인지편향

거짓 합의 효과 - 모두가 나와 같다고 착각하는 이유

by SerendInfo 2025. 4. 8.

지난 주말, 친구들과 식당을 고르다가 살짝 민망한 적이 있다. 내가 즐겨가는 일식당을 추천했는데, 막상 다른 친구들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맛있는 집을 싫어한다고? 다들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취향이나 의견이 다수의 생각과 일치할 거라고 과대평가하는 이런 심리적 현상을 '거짓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고 한다.

1977년 스탠퍼드 대학의 리 로스(Lee Ross)와 그의 동료들이 처음 이름 붙인 이 현상은 우리가 매일 무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인지편향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 믿음, 습관, 가치관이 '정상'이라고 여기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고 쉽게 가정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오늘은 이 흥미로운 심리적 착각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모두가 파란 풍선을 들고 있는 가운데, 한 사람만 빨간 풍선을 들고 있는 모습

 

착각의 심리학 - 우리는 왜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는가

대학생 때 선거철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모두 특정 정당을 지지했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 학교 대부분의 학생들이 같은 성향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체 투표 결과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했던 것이다.

거짓 합의 효과는 왜 생길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주로 비슷한 성향, 배경,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선택적 노출'이라고 부른다. 내 주변에 특정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음식을 좋아할 것'이라고 일반화하게 된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 의견이 다수의 의견과 일치한다고 생각하면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야'라는 생각은 일종의 심리적 방어 기제이기도 하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사회적 투사(social projection)'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 상태, 생각,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하면서 그들도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라 가정한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집단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적응적 기능을 했을 수 있다. 집단의 합의를 빠르게 예측하고 판단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을 테니 말이다.

 

보이지 않는 거울 속의 세상 - 거짓 합의가 숨어있는 일상의 순간들

버스에서 자리에 앉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내 음악 취향을 좋아할 거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거짓 합의 효과는 우리 일상에 무척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정치적 견해에서 이 현상은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 대선 때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압도적으로 이길 거라 확신했던 친구가 있었다. 자신의 SNS 피드는 모두 그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고, 주변 지인들도 같은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선거 결과는 그의 예상과 달랐다. 전형적인 거짓 합의 효과와 필터 버블(filter bubble)의 결합이었다.

소비 패턴에서도 이런 착각은 흔하다. 내가 최근 구매한 제품이 정말 좋아서 '이건 대박날 거야, 모두가 좋아할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했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마케팅 담당자나 창업자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다. 내가 좋다고 모두가 좋은 건 아니라는 단순한 진실을 잊곤 한다.

온라인 세계는 이런 거짓 합의 효과를 더욱 강화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기존 관심사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계속해서 노출시키므로, 자신의 의견이 대세라고 착각하기 쉽다.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결국 우리가 다양한 의견과 시각을 접할 기회를 제한한다.

 

소통의 벽을 세우는 착각 - 거짓 합의가 만드는 사회적 단절

작년에 회사 회식 메뉴를 정할 때였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을 강력히 추천했다가 큰 반발에 부딪혔다. '다들 이런 스타일 좋아하지 않나?' 하는 내 생각이 얼마나 주관적이었는지 깨달았다. 거짓 합의 효과는 이처럼 소통의 장벽을 만들고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초래한다.

대인관계에서 이 효과가 위험한 이유는 타인의 다른 관점이나 선호를 인정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와 같다고 착각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이상하다' 혹은 '틀렸다'고 판단하기 쉽다. 이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때로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저하시킨다.

사회적으로는 이런 현상이 집단 간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이 다수라고 믿게 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을 소수 혹은 비정상으로 치부하게 된다. 세대 갈등, 이념 갈등, 지역 갈등이 심화되는 원인 중 하나가 이런 거짓 합의 효과에 있을 수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이 편향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제품 개발자나 마케터가 자신의 선호와 가치관을 소비자 전체에 투영하면 시장의 다양한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이 창업자의 거짓 합의 효과 때문에 실패한다. '내가 이 서비스를 원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원할 거야'라는 가정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의 가치를 발견하는 여정 - 거짓 합의 효과를 넘어서기

거짓 합의 효과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서로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서 시작한다.

인지적 다양성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다른 배경, 경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다양성이 사회에 풍요로움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와 다른 의견도 그 자체로 가치 있고 배울 점이 있다는 열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다양한 관점에 노출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평소와 다른 뉴스 채널을 보거나,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평소 읽지 않던 장르의 책을 읽는 등의 노력이 도움이 된다. 지난달부터 나는 평소 관심 없던 역사 분야 유튜브 채널을 구독해 보고 있는데, 놀랍게도 새로운 시각을 많이 얻고 있다.

자신의 견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습관도 중요하다.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일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가능하다면 실제 데이터나 객관적 증거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기 위한 작은 설문이나 조사를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소통과 공감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극적 경청, 열린 질문, 판단 유보하기 등의 기술은 타인의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평가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거짓 합의 효과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왜곡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편향을 인식하고 넘어서려는 노력은 더 풍요롭고 균형 잡힌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음번에 '모두가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거야'라고 느낄 때, 잠시 멈추고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당연함'이 다른 이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