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니에요.”
TV 뉴스나 인터넷 댓글에서 자주 보이는 이 말은 단순한 믿음일까, 아니면 인간 본성의 발현일까?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사람이 우리 가족, 친구, 혹은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쉽게 그의 잘못을 의심하지 않는다. 반면, 같은 행동을 낯선 사람이 했을 경우에는 훨씬 더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 이것이 바로 ‘내집단 편향’이라는 인지적 함정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우리 편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본능이 만든 렌즈, 내집단 편향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은 말 그대로 자신이 속한 집단에 더 호의적이고 관대하게 평가하는 심리적 경향이다. 이 편향은 단순히 의식적인 태도가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 진화해 온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본능이다. 과거 원시 시대에는 생존을 위해 집단 내부의 협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타인을 평가할 때도 본능적으로 ‘내 편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는 심리가 생긴 것이다.
1970년대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지펠은 이 편향의 작동 방식을 아주 단순한 실험으로 증명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무작위로 집단을 나눈 뒤, 익명의 다른 참가자에게 점수를 매기게 했다. 놀랍게도, 아무 의미도 없는 집단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었다. 이처럼 사람은 단지 “우리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다르게 평가하게 된다.
이 편향은 일상에서도 흔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지각하면 “어제 힘들었나보다”라고 이해하면서도, 낯선 동료가 같은 행동을 하면 “무책임하다”고 느끼는 경우다. 같은 행동을 보고도 판단은 달라진다. 왜? 그는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를 분열시키는 심리적 실선
내집단 편향은 현대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는 이 편향이 매우 강하게 작동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행동에는 관대하고, 반대 진영의 인물에게는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같은 발언, 같은 정책이라도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내려진다. 뉴스 기사나 정치 토론을 보면 “사실”보다는 “진영”이 판단 기준이 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반칙을 하면 “경기 흐름상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하고, 상대 팀이 똑같은 반칙을 하면 “비신사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한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도 ‘누가 했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는다.
SNS 환경에서는 이 편향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알고리즘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콘텐츠만 보여주기 때문에, 내집단에 대한 신뢰는 강화되고 외집단에 대한 불신은 심화된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생각이 ‘객관적인 사실’처럼 굳어지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는 점점 어려워진다.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되고, 대립은 깊어진다.
회사나 조직 안에서도 이 편향은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같은 실수라도 내가 속한 팀원이 하면 “실수는 누구나 하지”라고 말하면서, 다른 팀원이 하면 “이래서 그 팀은 문제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다. 이러한 판단은 공정성을 흐리고, 조직 내 갈등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윤리와 정의마저 흐리는 편향의 그림자
문제는 내집단 편향이 단순한 감정 수준을 넘어, 윤리적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어떤 사안이 잘못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우리는 사실보다는 ‘누가 했는가’를 먼저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이 내 가족이거나 친구이거나, 같은 지역 혹은 같은 정당, 같은 팬덤 소속이라면 무의식적으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합리화하게 된다.
이 편향은 특히 권력형 범죄나 조직 내 부패, 학교 폭력 등의 사건에서 두드러진다. 가해자가 내 집단의 일원일 경우,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상황을 더 이해하려 하며, 사건을 축소하거나 덮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우리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이 편향이 작동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이런 태도는 결국 ‘정의’라는 개념 자체를 왜곡하게 된다. 잘잘못의 기준이 공정함이 아니라, 소속감과 감정이 되는 순간, 사회는 신뢰를 잃는다. 더 나아가 집단 전체가 자신들의 잘못을 보지 못하게 되고, 그 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거나 배척당한다.
내편이 아닌 옳은 편을 선택하기 위한 연습
내집단 편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리다. 그것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인식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왜 내가 이 판단을 내리고 있는가?’를 자문하는 것이다. 그 판단이 감정적인가, 아니면 근거와 논리를 따랐는가를 스스로 따져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또한, 다른 집단의 입장에 서보는 훈련도 필요하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능력은 편향을 줄이는 강력한 도구다. 우리가 나 아닌 누군가의 ‘내집단’ 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좀 더 공정하고 너그러운 태도를 가질 수 있다.
비판적 사고는 세상을 날카롭게 보는 도구이자, 내 편향을 돌아보는 거울이다. 편향을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그 편향이 내 판단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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